카테나치오를 완성시킨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이탈리아를 축구 강국으로 이끈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이탈리아를 축구 강국으로 이끈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우리나라에서는 빗장수비라고 잘 알려진 카테나치오 축구 전술은 1960년 인테르의 감독직을 맡았던 엘레니오 에레라로부터 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카테나치오 전술을 통해서 이탈리아는 축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 축구하면 떠오르는 전술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재미없는 축구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던 전술이지만 현대축구로 흘러와서는 당시 카테나치오의 전술이 굉장히 고평가 되고 있는 축구 선술입니다.
당시 에레라 감독은 선수들이 잠을 자는 것부터 시작해서 훈련, 식사, 그리고 시합 전날에는 선수들의 모든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로 유명했던 감독으로 선수들이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루에 12시간씩 숙면을 취할 것을 요구하며 밤 9시에 취침하여 다음날 아침 9시에 기상하는 반복적인 생활을 유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런 규제가 익숙지 않았던 선수들은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혈질 성격인 에레라 감독의 성화를 이겨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카테나치오 전술은 1940년대 말 쥐세페 비아니 감독에 의해서 시작했지만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은 축구 선술이었습니다. 카테나치오 전술이 완벽하게 성립된 시기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펠레와 가린샤를 앞세워 4-2-4 전술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때로 발기술이 좋았던 남미권 나라에 비해서 개인기가 약한 유럽팀은 남미팀을 상대로 굉장히 고전하면서 그들을 막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전술들이 나오지만 유일하게 성공한 전술이 카테나치오 전술입니다.
에레라 감독이 카테나치오를 결정적으로 완성한 시기는 1960년대 월드컵이 끝난 이후 유럽에 불어닥친 4-2-4 전술에 대항하는 전술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처음부터 에레라 감독이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스페인 시절 감독직을 맡을 당시에는 화련 한 공격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인테르 처음 부임 당시에도 공격적인 축구 전술을 구사했지만 계속된 리그 3위, 2위를 기록하면서 3번째 시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경질하겠다는 구단주의 말에 카테나치오 전술을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기본적인 포메이션을 생각해보면 5-3-2로 나타낼 수 있지만 실제로 경기장에서는 이와 같은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하기보다는 양쪽 윙백들은 공격 가담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그 자리를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채워주는 전술을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에레라 감독은 수직적인 빠른 패스의 축구를 선호했으며, 단 3번의 패스로 상대편 골 에어리까지 도달하는 것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바로 비효율적으로 많고 부정확한 패스를 통해 선수들의 체력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패스의 개수는 적지만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아끼고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원했던 에레라 감독의 대표적인 축구 철학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하던 때에도 효율적인 경기를 운영하는 것은 좋아했으며 이것은 측면 공격을 강화하면서 측면과 중원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도록 했습니다.
에레라 감독이 인테르 감독직을 수행하던 당시 인테르의 키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었던 왼쪽 수비수 지아친토 파체티와 오른쪽 윙어 자이르 선수였는데, 이 두 선수를 에레라 감독만의 스타일로 카테나치오 전술에 입히면서 시작됩니다.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량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파체티 선수를 공격 전개에 중요한 키 역할을 하게 만들었으며 자이르 선수의 수비력과 활동량을 토대로 그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인테르는 수비 시에는 5백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되면서 공격 작업 시에도 양쪽 풀백들이 공격 전개를 진행하고 미들라인 선수 2명은 그 자리를 메워주는 형식의 카테나치오 전술이 인테르에 완벽하게 입혀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인 수아레즈는 플레이메이킹을 도와주면서 공격진에서는 산드로 마 졸라가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면서 인테르의 카테나치오 전술 완성과 함께 황금시기를 맞게 됩니다.
실제 이 전술을 통해서 인테르를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했으며 62-63, 64-65, 65-66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테르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에레라 감독이었지만 66-67 시즌 인터컨테셔널컵에서 카테나치오의 약점을 꿰뚫고 나온 셀틱에게 패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1968년 인테르에서 AS로마로 감독직 이적을 하게 됩니다.
AS로마에서도 에레라 감독의 축구 전술인 카테나치오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토털사커에 밀리면서 카테나치오는 더 이상 빛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AS로마에서 3 시즌을 보내고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은 축구 전술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감독직을 수행하던 당시에 여러 가지 불화설과 선수에게 대하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지울리아노 타 콜라의 사망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서 비난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상습적으로 약물을 투여했다는 의혹도 받으면서 축구 전술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는 찬사를 받지는 그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